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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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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11월 쉼터일기

페이지 정보

조회 : 548회 작성일 : 21-05-27 11:23

본문

도저히 못 있겠네요    2011/07/07

밤 9시30분 경 전화가 한 통 왔다. 젊은 학생이 길에 노숙하고 있는데 쉼터에서 생활할 수 있냐고 물었다.

"혹시 본인이세요?"

-"아뇨, 길에 계신데 잘 곳이 없나봐요?"

"여기는 미성년자는 계실 수 없어서, 경찰서 쪽으로 안내를 해드리는 게 나을 거 같네요."

-"네...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또 전화가 왔다.

-"나이가 25세라고 하네요."

"혹시 어디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하시지는 않나요?"

가끔 병원으로 옮겨야 할 분을 모시고 오는 경우들이 있어서 상태를 물어보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조금 있으면 문을 닫으니까 빨리 오셔야 할 거 같네요."

잠시 후 차로 직접 모시고 왔는데 건강한 모습의 청년이었다. 잘 곳이 없다고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오늘 출소했다고 한다. 고시원에서 살았었는데 돈도 없고 해서 막막하던 차에 누군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따라왔다고 한다. 쉼터는 처음이라는데 이것저것 간단히 설명을 한 뒤 식사를 안했다고 해서 빵을 드렸다. 빵을 다 드신 후 방으로 안내해 드렸는데 갑자기 난색을 표명했다.

-"도저히 못 있을 거 같네요...죄송합니다."

"왜요? 가실 곳이 없쟎아요."

-"그래도 여기는 못있을 거 같아요."

"오래 안계셔도 돼요. 오늘이라도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떠나세요. 여기 이상한데 아니거든요"

-"죄송합니다. 안되겠어요. 도와준다고 해서 따라오긴 했는데 도저히 안 될 거 같네요. 혹시 아까 그분 전화번호 있으신가요? "

"아뇨, 저희도 처음 본 분인데요. 그분에게 도와달라고 하려고요? 그러지 마세요. 그분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여기로 모셔왔겠죠."

결국 30분도 있지 못하고 쉼터를 나갔다. 아마도 먹고 잘 곳이 있다니까 따라온 모양인데 본인이 생각하던 것과는 아주 달랐던 모양이다. 우리처럼 여럿이서 함께 자야 하는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여관방이나 고시원처럼 1인 1실을 생각한 걸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를 도와주려고 기다리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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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가수 김종찬목사 특별집회    2011/07/20

일시:2011.9.29~30 저녁6시30분~
장소:가나안교회3층 본당
강사:김종찬목사
강사소개
1988년 ‘사랑이 저만치 가네’ ‘토요일은 밤이좋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 ‘산다는 것은’ ‘아름다워라그대’, ‘내 사람아’, ‘비’.... 등의 노래로
그해의
*십대가수상,
*최고 인기가요상,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신인가수상,
*가요탑텐의 여러차례 1위수상...등 약 20여개의 부문에서 수상한바 있음.
**현재 전국 교도소, 보호감호소, 군부대, 탈북자, 알콜 중독자,  병원, 장애인, 치매노인 시설....
전 세계 미국, 일본, 캐나다,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등을 다니며 하나님의 찬양의 나팔로 복음의 전도자로 쓰임 받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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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더위    2011/07/20

지난 주 긴 장마가 끝난 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쉼터 숙소가 지하에 있는데다가 여럿이서 공동생활을 하다보니 일반가정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더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겨울에는 지하가 따뜻하고 여럿이 있는 것이 추위에 도움이 되는데, 여름은 그렇지 못하다. 에어컨 하나 설치할 공간이 없어서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보내야 하는데 벌써부터들 신경들이 예민하다. 밤에 잠을 설쳐야 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주 목요일 초복이 지나갔으니 중복,말복도 곧 돌아오리라 기대한다. 그러고 나면 찬 바람이 나고 또,겨울나기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걸 생각하면 여름은 여름대로 즐기고, 겨울은 겨울대로 즐기는 여유도 필요해 보인다.
지난 주 초복때는 초복임을 알리는 삼계탕이 점심으로 제공되었다. 여름이면 누구보다 고생하는 분들이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다. 직원들뿐만 아니라 외부봉사자들 역시 함께 고생하기 마련이다. 큰 사고 없이 여름을 지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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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호실시상    2011/07/26

2분기 우수호실 시상이 어제 저녁에 있었다. 1등은 1985점을 받은 14구역이 차지했고 2등은 1549점을 받은 12,15구역이 차지했다. 1등부터 5등까지 시상을 했는데 1등에게는 옥상에서 삼겹살 회식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2등에게는 간식으로 족발이 제공되었다. 이번 우수호실선정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것은 봉자점수였다. 식기봉사나 각종 봉사에 참여할때마다 점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1등을 한 14구역원들이 봉사에 적극적이어서 봉사점수 비중이 높았다. 더운 날씨에도 짜증내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젊은 분들이 많이 있다. 서로 조금씩 더 노력하면 살기좋은 공동체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 무더위가 한창인데 좋은 마음으로 여름을 지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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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는 찌고, 위는 시끄럽고    2011/07/26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우리 쉼터는 여름에 취약하다. 겨울에는 지하가 따뜻하고 좋은데 여름엔 덥고 습해서 지내기에 불편하다. 게다가 여름철인데도 인원이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 3층 성전을 개방해 놓고는 있지만 모기가 많아서 성전에서 자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지하숙소 말고 2층에 있는 숙소 역시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다. 지하보다 상대적으로 덥지는 않은데 바로 바깥이 윤락업소이다 보니 밤에 시끄러워서 자기가 힘들다고 한다. 더워서 창문을 열어놓아야 하는데 창문을 열면 직업여성들이 호객하는 소리에, 사람들 떠드는 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등 예민한 사람은 하루도 있기 힘든 환경이다.

우리 교회가 588에 있다고 해도 사실 그대로 믿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다들 그 주변에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은 정말 한 복판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문을 열면 찻길이고 그 양쪽으로 업소들이 즐비하다. 사진은 우리 현관문에서 찍은 것이다. 이러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다들 웃으며 지내는 걸 보면 마음이 기쁘다. 아직 환경적으로는 아직 어떻게 해 줄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 빨리 건물을 매입해서 리모델링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럭이 못된다. 환경적으로는 열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택해서 오는 분들을 보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번듯한 집과 편안한 삶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이곳에 영생이 있고 이곳에 평안이 있고 이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래도 무더위를 식혀보고자 점심마다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여름도 금방가리라 생각된다. 여름이 가면 또 겨울을 준비해야 하고, 보일러에 땔 나무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나가는 여름도 아쉬워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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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을 가지고 노는 28세 청년    2011/08/01

얼마 전 입소한 청년이 인형을 안고 잠을 잔다는 소리에 어떤 인형인지 궁금했다. 인형을 볼 수 있냐고 물으니 방에서 가져왔는데 색동저고리를 입은 동물인형이었다. 한쪽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덩치는 산만한 청년이 인형을 가지고 잔다는 것이 신기했다. 4년전 일을 해서 번 돈으로 구입을 했다고 한다.
왜 다 큰 어른이 여자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인형에 집착할까? 사실, 이 분은 지적장애 3급이다. 그동안 송파에 있는 교회에서 생활하면서 김치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하는데 더이상 교회에서 숙식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생활할 곳을 알아보던 중 여기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1년이면 600~700명이 이곳을 거쳐 가지면 이 사람처럼 인형을 가지고 다니는 분은 처음보았다. 마음이 여리고,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이제 교회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으니 가족처럼 생각하며 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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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    2011/08/01

이XX씨(38세)가 상담도중 두려움을 호소했다. 전에 정신분열로 인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나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라고 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상태가 점점 안좋아 지고 있었다. 쉼터에 온지 일주일 가량 되었는데 급기야 오늘은 자살을 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버티고 있다가 칼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행히 상담을 하는 도중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극심한 두려움과 환청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분은 너무 두렵다고 했다. 너무 두려워서 죽는 것이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 분의 말을 듣다보니 그 두려움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을 겪고 있었는데, '그래서 자살을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해서 빨리 병원으로 보내드렸다. 이런 경우들은 시간을 다투는 경우들이 많다. 간발의 차이로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사히 치료를 받고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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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홈리스월드컵      2011/08/19

노숙인 축구 국가대표, 파리 홈리스 월드컵서 희망의 슛 쏜다 -경향신문
노숙인 국가대표 축구팀이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9회 홈리스 풋살 월드컵(4인제 미니축구 방식)에 참가한다. 지난해 제8회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 출전이다.
대회는 21일부터 28일까지 8일간 프랑스 파리 샹 드 마르스에서 진행된다. 21일 개회식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27일까지 53개국 64개의 남녀팀이 총 350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28일엔 결승전과 시상식이 열린다. 올해 홈리스 월드컵은 아르센 웽거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감독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홈리스 월드컵 한국대표팀은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의 선발전을 거쳐 최종 8명의 선수로 꾸려졌다. 10개의 서울 노숙인 축구팀이 경합을 벌였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이다. 이전 대회 경험이 없는 16세 이상(국제기준) 노숙인이면 누구나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할 수 있다.
조현성 홈리스 월드컵 한국 대표팀 코치(28)는 “순위나 성적보다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노숙인들이 더 넓은 시각을 갖고 자립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며 “어둡고 우울한 모습들을 털어내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 출전한 지난해 브라질 대회에선 남자 43개팀 중 43위 꼴찌였으나 선수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모습이 돋보여 ‘최우수 신인팀상’을 탄 바 있다.
조 코치는 “지난해 출전한 6명의 선수들 모두가 사회성 함양 등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고 그중 4명은 자립에 성공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홈리스 월드컵은 인터넷 홈페이지(www.homelessworldcup.org)를 통해서도 관람할 수 있다.
한편 대표팀은 홈리스 월드컵 다른 나라 참가 선수들에게 독도수첩을 선물해 독도와 동해 표기를 알리는 외교활동도 함께 펼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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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월드컵이 새 삶 디딤돌 되길”-경향신문

ㆍ노숙인 축구팀 파리 출국

세계 노숙인들의 축구대회인 ‘홈리스 월드컵’에 나서는 한국 대표선수 8명과 스태프 4명이 지난 17일 오후 9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찜질방에 모였다. 출국을 하루 앞둔 합숙 자리였다. 각자 이름이 쓰인 붉은색 대표팀 유니폼과 점퍼를 지급받은 선수들은 출국한다는 사실 자체에 설렜다.
대표팀 막내 임한솔씨(23)는 고교 때 축구선수였다. 가정불화로 가출한 뒤 교회 보호시설에 머물면서 자활근로를 해온 그는 요즘 축구를 향한 꿈을 다시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수년간 떨어져 지내던 어머니와 다시 만나는 기쁨도 맛보았다. 임씨는 “득점왕이 목표”라고 했다.
주장 이승교씨(42)는 “홈리스 월드컵에서 돌아오면 그동안 미뤄온 마을버스 기사 취업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형버스 운전면허를 딴 이씨는 홈리스 월드컵에 참여하기 위해 취업을 잠시 뒤로 미뤘다.
대표팀 맏형 임흥식씨(56)는 담담했다. 그저 “부상 없이 웃으며 돌아오겠다”고만 했다. 임씨는 젊은 시절 유도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몸이 좋았다. 나이 들면서 건강이 나빠져 한때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지만, 축구를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 구영훈씨(44)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축구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밤에도 혼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조깅도 매일 했다”고 말했다.
올 여름, 선수들은 변변한 훈련을 못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기 때문이다. 코치진은 성적보다 노숙인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무두 선수단장은 “노숙인을 동정이 아니라 동참의 대상으로 봐달라”고, 조현성 코치는 “사회의 냉소적 시선이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열리고 있는 홈리스 월드컵은 세계 각국에서 집없는 이들이 모여 풋살(FIFA 공식인증 실내 축구경기)로 승부를 가린다. 43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는 프랑스 파리에서 20일(현지시간)부터 1주일간 열린다. 한국선수단은 18일 오후 1시45분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문기씨(36)는 “남들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이번 대회가 그런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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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기 보다 쓰기가 더 어려운 나이.    2011/08/23

여든 넷의 나이에 귀까지 잘 안들리는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다. 입소하러 온 건 아니고 상담을 하러 오셨다는데, 절을 짓는 얘기부터 시작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땅에 절을 짓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알아봤지만 요양원은 지을 수 있어도 절은 지을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한다. 무슨 말씀인지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절을 지을 터와 건축비용을 가지고 있는데 다들 돈에만 욕심이 있다는 식인거 같았다. 자식이 육남매지만 그 중 세명은 죽고 큰 손주와 나머지 세 자녀가 있다고 했다. 자식들 앞으로 어느정도 땅을 분배해 주긴했는데 나머지 재산때문에 싸움이 날까 걱정하고 있었다.
현금으로 12억 정도를 갖고 있다고 했고, 땅도 천여평되는 땅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자기가 지어주겠다며 자기를 자주 찾아온다고 했다. 물론 돈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선뜻 맡기지 못하고 있다. 돈이 있어도 편하지가 않은 모양이다. '죽기전에 가지고 있는 돈이라도 쓰고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84세의 나이에 기력도 안좋은데 그돈을 사용하기에는 무척 어려워보인다. 그분을 보니 돈을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세한 얘기를 하지는 않지만 자녀들과 사이가 안좋은 것 같았다. 자녀들이 있으니 자녀들과 의논하시라 해도 자녀들은 관심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 돈이니 아버지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돈도 있고, 땅도 있고, 자식도 있는데 몇 번을 자살하려 했다고 한다.
성경을 보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이 있다. 세상에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선한 사업에 쓰는 일일 것이다. 이제 잠시후면 하나님앞에 가야할 나인데 아직도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그 할아버지 말씀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어나서 가시는 모습이 마치 돈을 걺어지고 가는 모습이었다. 젊었을 때 돈을 걺어지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겠으나, 세상을 떠날 나이에 돈을 걺어지고 다니는 모습이란 짐짝을 지고 가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돈도 쓸 수 있을때 써야 하는 것을, 이미 때를 많이 놓쳐버린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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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크로스 선교합창단 공연    2011/08/31

지난 8월 14일 홀리크로스 선교합창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30여분의 단원들이 오셔서 찬양으로 함께 해 주셨고, 선교합창단 지도목사님께서 직접 설교를 해주셨습니다. 바쁜 일정가운데서도 오셔서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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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월드컵 한국, 일본 누르고 3승 쾌거 ‘꼴찌→39위 껑충’(뉴스엔)    2011/09/06

홈리스월드컵 한국, 일본 누르고 3승 쾌거 ‘꼴찌→39위 껑충’
 
지난 8월 21일부터 28일까지 8일간 개최된 홈리스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감격의 3승을 거뒀다.

서울시와 대한축구협회가 후원하고 서울형 사회적기업 빅이슈코리아가 주관한 ‘제9회 2011 프랑스 파리 홈리스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13전 3승 10패로 남자팀 48개국 중 39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일본, 핀란드, 홍콩에 승리를 거뒀다.

지난 5월과 7월에 1,2차에 걸쳐 홈리스 선수 선발을 통해 준비해 온 이번 대회에서는 ‘평균 연령 40세’라는 불리한 팀 구성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브라질 대회 43위(최하위, 11전 1승 10패)보다 앞선 성적을 보여주는 기염을 토했다.

홈리스월드컵은 홈리스들이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계기로서 열리는 축제의 장이다. 홈리스 상태를 넘어서고 그들 스스로 목표를 성취해 내도록 동기부여 하는 것이 이 대회 목적이다.

남녀 총 53개국 64개 팀으로 다양한 빈곤층이 참여한 이번 파리 대회에는 남자 대회에서는 스코틀랜드, 여자 대회에서는 케냐가 홈리스월드컵 우승 영예를 안았다.

또 올해 대회는 아스널FC 아르센 벵거 감독이 조직위원장을 맡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주역인 엠마뉴엘 쁘띠가 전 일정 내내 경기장을 지켜 참가한 모든 이들을 감동시켰다.

홈리스월드컵 한국 대표팀 단장 진무두 빅이슈코리아 대외협력국장(34)은 “홈리스가 가진 가능성을 세계와 공유하는 글로벌 스포츠 사회공헌 사업에 대한민국 홈리스대표팀이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그들의 빈곤과 싸워 이길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매년 열리는 홈리스월드컵은 나이키에서 후원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 경기에는 국내 다수 기업이 해외 국가팀 스폰서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참가 선수들은 7321 디자인 후원으로 53개국 64개 팀 800여명에게 ‘독도 수첩’을 선물해 외교 활동도 함께 펼쳤다. 독도 수첩에는 이번 개최국인 프랑스가 제작한 ‘독도’와 ‘동해’가 명시된 고지도가 디자인돼 있다.

모든 일정을 마친 홈리스월드컵 대표선수단은 8월 30일 오후 2시 50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빅이슈코리아는 홈리스의 가능성을 알리기 위해 앞으로도 매년 한국 주관사로서 홈리스월드컵에 참여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형 사회적기업인 빅이슈의 다양한 노숙인 지원사업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노숙인의 인식을 개선시켜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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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을 위한 문화공연    2011/09/06

9월 3일 토요일에는 탈북민을 위한 문화공연이 한국교회100주년 기념관 대강당에서 있었다. 이번 행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주최와 한기총 탈북민정착지원본부,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주관,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김종찬목사님의 부탁으로 우리교회 아둘람 찬양단도 특송을 하는 순서가 주어졌고, 20명의 찬양단이 많은 분들앞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영광을 얻었다. 김종찬목사님은 아둘람찬양단을 소개하면서 한 때는 탈북민들처럼 어렵고 험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이제 주님 안에서 변화받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꾼들이 되었다고 하여 많은 분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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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조찬기도회    2011/09/06

김도진목사님께서는 10월 5일 국회조찬기도회를 인도하십니다. 이번 조찬기도회를 통해 목사님께서는 노숙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거리의 많은 노숙인들이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얼마든지 변화되어 나라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할 것입니다. 많은 기도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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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른 곳으로...    2011/09/07

5월 중순, 탈북민 한 분이 입소했다. 거리에서 노숙을 하다가 여기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이제 37세의 젊은이였다. 어떡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상담을 하던 중 형이 먼저 한국으로 들어왔고 2007년에 자기도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오면 정착자금도 나오고, 매월 생활자금도 나오는데 4년만에 노숙을 하게 된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며칠 생활하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드러났다. 폭력적이고 분노조절이 안되었다. 처음에는 한국문화에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했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눈썹을 다 밀고 오기도 했고, 처음 보는 사람과 시비가 붙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결국 일이 터졌다. 입소한지 한달만이다. 사무실에서 서울시 일자리를 보내드렸는데, 거기서 사고를 쳤다. 일터에 나온 아주머니를 호미로 내리친 것이다. 일하면서 잔소리를 하자 분을 못참고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로 인해서 상대방 아주머니는 머리를 20방울 정도 꿰맸고 백XX경찰서에 붙들려 갔다. 다행히 초범인데다가 상대방에서 선처를 하는 바람에 벌금으로 끝났다.
그렇게 처음 한 달이 힘들게 지나갔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승객들과 시비가 붙을 정도로 비정상적이어서 더이상 일을 보낼 수도 없었다. 본인은 고시원이라고 얻어서 나가고 싶어했지만 당장 한 달치 낼 돈도 없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자 행동이 많이 좋아졌다. 그렇다고 약을 먹은 것도 아니다. 북한 사람들은 정신과치료를 이상하게 본다고 한다. 물론 우리도 아직 그런편이지만.
한 두달 지나면서 싸움도 줄어들고, 웃기도 하는 등 좋아지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교회 주변 청소를 시키면서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필요한 데 쓰라고 주었는데, 한 동안 잘 하는가 싶더니 일은 둘째고 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뭐하면 돈을 얼마주느냐는 식이다. 그러더니 그나마 받은 돈으로 술을 먹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결국 며칠전, 술김에 짐을 싸가지고 나간뒤 아직까지 안들어 오고 있다. 다시 와도 받아주지는 못한다.
이런 분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 사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거리 곳곳에 시한폭탄과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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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비24,000원    2011/09/19

우리가 매일 숨쉬고 있는 산소의 가격은 얼마나 할까? 물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 쉼터에 폐가 안좋아서 산소발생기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전에는 세분계셨는데 올해 5월에 한 분이 돌아가셔서 이제는 두 분이 계신 셈이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위급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벌써 여러차례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중에 한 분이 얼마전 주민등록번호를 새로 만드신 박명X씨다. 올해 68이신 박명X씨는 주민등록번호를 새로 만든 뒤 처음으로 노령연금이라는 걸 타게 되었다. 한달에 9만원 정도 나오는 금액이지만 이 분에겐 더 없이 소중한 금액이다. 그런데 이분이 호흡곤란증세가 있어서 병원에 자주 입원하셨고, 병원에서는 산소발생기를 하도록 처방을 내렸다. 매번 산소를 교체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어서, 대여를 하는 쪽을 택했는데 환자들에겐 매월 24,000원씩 대여를 한다.
문제는 월9만원의 노령연금 중 24,000원씩 산소비로 나가야 한다는 걸 무척 아깝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박명X씨는 산소기가 없어도 된다면 안하려고 하신다. 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이해는 되지만 그렇게 할수는 없다. 24,000원에 내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그 돈을 아깝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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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2011/09/19

올해 5월, 강봉X씨가 입소했다. 이제 47세의 나이였는데, 몸 상태가 많이 안좋았다. 6월 21일 설사를 많이 하고 기운이 없는데다가 변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해서 응급실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할뻔 했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방실장님이 자주 다니며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그렇게 20일이 지난 뒤 퇴원을 했다. 보통 몸 상태가 안좋아도 쉼터에 와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금방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이분같은 경우는 쉼터입소후에도 상태가 계속 안좋아지는 케이스였다. 이유인즉, 술로 인해 이미 간경화가 와 있었고, 다른 내장기관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쉼터에 와서 술을 먹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쌓은 술로 인해 몸의 회복이 더디게 일어났다. 퇴원후 간경화치료와 위식도파열에 대한 치료가 병행되었다. 그리고 대장항문쪽 수술 후 치료 역시 계속되었다. 그렇게 많이 좋아지는 가 싶었는데 지난 8월말 무단으로 안들어오기 시작했다.
술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참았던 술을 다시 입에 대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무단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8월 30일 무단퇴소가 되었고, 그렇게 잊혀졌다. 그런데 지난 9월 11일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강봉X씨가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객사하신 것이다. 쉼터에 입소해서 겨우 몸이 나아지고 있었는데, 그런 몸에다 술을 또 먹기시작했으니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참 괜찮은 분이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 쉼터에서의 생활이 마지막 생활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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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아름다운 공동체 만들기 캠프    2011/10/11

지난 9월 9일~10일까지 2011 아름다운공동체 만들기 캠프가 충북제천 동대문구수련원에서 있었다. 이번 캠프는 추석을 앞두고 실시되었는데 총170분이 참여하여 공동체의식을 강화하고 함께 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당일 일찍 수련원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체육대회를 하였는데 이번 체육대회의 우승은 청군이 차지하게 되었다. 시종일관 백군이 이기다가 막판 달리기계주에서 청군에 지는 바람에 아쉽게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저녁에는 바베큐파티를 했는데 바베큐그릴 8개가 동원되었고, 삼겹살 80근이 소비되었다. 그 외에도 가까운 곳에 있는 고수동굴관람을 다녀왔고, 일부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도 하고, 수련원 노래방을 이용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갔지만 질서정연했고, 사고 없이 다녀올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수련원 관계자들 역시 수련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술을 먹고 시끄러운 경우가 많아서 내심 걱정을 했다고 하는데 예상밖으로 너무 조용히 있다가셔서 놀랬다고 한다. 이제 어디를 가든 쉼터에서 온 티가 나지 않는다. 그만큼 성숙하고 변화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쉼터 식구들의 식사를 위해 수고한 주방팀에게도 역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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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조찬기도회    2011/10/11

10월 5일 국회조찬기도회가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있었다. 민주당 우제창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조찬기도회에서 김도진목사님은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라'는 제목으로 진정한 복지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셨고 많은 분들이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냈다. 이번 조찬기도회 역시 아둘람찬양단이 특송을 했는데 가장 많은 34명이 참여하여 큰 은혜를 끼쳤다. 바쁜 가운데도 교회행사에 적극협조하여 본 교회에서만 170명가까이가 참여했고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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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관찰    2011/10/14

엊그제 밤10시가 넘어서 경찰의 부탁으로 쉼터에 오게 된 박봉X씨가 있다. 술에 취한 상태로 오갈 곳이 없자 경찰에게 부탁을 했고, 우리 쉼터로 데리고 온 것이다. 이미 출입문을 잠그고 취침할 시간이었지만 행색이 말이아닌데다가 경찰의 부탁이 있어서 받았고, 목욕을 시킨 뒤 옷을 갈아입혀서 잠을 재웠다. 오른쪽 어깨는 다쳐서 핀을 박았다고 하는데 아직도 붕대를 붙여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 오전에 드릴 말씀이 있다고 찾아왔다. 자신이 보호관찰 중인데 보호관찰소에 다녀와야 하고, 차비가 없어서 부탁을 하러 왔다고 했다. 나중에 가면 안되겠냐고 하니, 몇 번이나 오라는 것을 안가서 오늘도 안가면 문제가 생길거 같다며 하소연을 했다. 하는 수 없이 5천원을 주면서 나중에 갚으시라고 했다. 그리고 1시간 뒤,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횡성수설하기 시작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불러다가 물어보았다.

"보호관찰소에 가야 한다고 해서 차비를 드렸는데 그걸로 술을 드세요?"

-"가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깨가 아파서 일을 못하니 좀 봐달란다. 아직, 쉼터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사람이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사회는 들어주는 곳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몇 번 거절을 당하고 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마음대로 살아보라고 내보냈다. 그래도 나갈 때는 쉼터에서 주었던 옷과 신을 신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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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 놓은 통장    2011/10/18

이희X(64세)씨가 몇 년 만에 사무실에 와서는 1년 6개월전에 맡겨 놓았던 통장을 달라고 한다. 10만원정도 들어가 있는데 헌금도 하고 써야 겠다는 것이다. 물론 맡겨 놓은 통장은 없다. 치매에다 정신 질환이 있어서 요양병원에 보내드렸었는데 병원측에 물어보니 작년 4월에 퇴원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동안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서 상담기록지에 나와있는 번호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동생은 오빠가 이 곳에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놀랬다. 작년에 요양병원에서 퇴원을 시킨 후 일산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오늘 다른 곳으로 보내드리려고 퇴원수속을 하고 있었는데 없어진 모양이다. 그리고 여기에 오신 것이다. 2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이곳을 기억하고 있었고 2년 전 하던 소리를 그대로 하고 있었다. 그 때도 10만원이 있었고 그걸 찾아야 한다는 소리를 했었다. 정말 놀랍다. 2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희X씨의 생각은 그대로였다. 우리는 모든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본인은 너무나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셨다. 결국 동생분이 빠른 시일내에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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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아들    2011/10/19

80이 넘어보이는 할머니와 아주머니 한 분, 그리고 남자 한 분이 사무실에 오셨다. 언뜻보기에도 남자분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병원에서 퇴원했는데 쉼터에 계실 수 있는지 문의차 왔다고 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

-"귀가 잘 안들리는 거 빼놓고는 괜찮아요."

정말 귀가 안들리는지 가지고 온 김밥만 열심히 드시고 계셨다.

"아저씨, 잘 안 들리세요?"

잠깐 쳐다보더니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김밥을 드셨다. 오래동안 병원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귀만 안들리는 거 같지는 않았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소..라"

"어머니, 아들 이름이 이소라가 맞나요?"

-"아뇨,,,이상X예요."

자세히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귀가 안들리는 것도 아니었고, 정신 분열로 인해 오랜 병원생활을 하면서 대화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귀에 감지장치 있다고 하는등 전형적인 망상과 분열증세를 보였다. 어머니와 함께 온 분은 누나라고 했는데 동생이 병원에서 20년이나 있었다고 했다. 한 번은 동생이 실종된 적이 있었는데 10년만에 용인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찾았다고 했다. 본인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니 보호자를 찾기까지 오래 걸렸나보다. 그후로 병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는데 퇴원하면 이분을 책임지기가 어렵다보니 또 다른 병원이나 시설로 보내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 쉼터에도 계실 수는 없어서 요양병원에 보내드리기로 했는데 어머니는 더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은 듯 자식에게 가겠다는 인사도 안하고 나가셨다. 군대도 갔다왔다는 것을 보니 처음에는 정상이었나본데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 57세의 나이에도 어려보이는 것이 20년간 아무생각없이 병원에 있었음을 증명해준다.
아들에게 인사도 없이 나가시는 어머니와 누님에게 잘 있으라는 인사라도 하고 가시라니까 자기들도 못 알아본다며 마지못해 손을 한 번 잡아보고는 나가셨다. 다시는 이 아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처럼 보였다. 부모로써 차마 그 책임마저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며 아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으러 다니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남은 정마저 떼어버리려는 모습이 좋지 않았다. 쉼터에 몇 일 계신동안 누님은 간식도 챙겨오고 같이 예배도 드리는 등 형제의 모습을 보였지만 이분은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계셨다. 이번에 병원에 내려가시면 앞으로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병원에 가시는 날 조차도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우리 시설에서 받지 않을까봐 귀만 잘 안들린다고 하셨고, 병원에 내려갈때까지 2~3일만이라도 데리고 있을 수 없냐는 소리에 그럴 형편이 못된다며 거절하는 모습을 보며 누구의 탓을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 인생만으로도 힘든 나이에 60이 다 되어가는 아들을 책임진다는 것이 어찌 부모의 도리로 가능한 얘기일까? 아들은 잘 내려가셨고, 잘 계실 것이다. 아들의 장례까지도 병원에서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셨는데 연세로 보아선 아들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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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만 잘 나와도 감사    2011/10/28

감사의 조건을 찾으려면 끝이없고, 불평 거리를 찾으려 해도 끝이 없다. 박명X씨(68세)가 몇 주째 소변때문에 고생이다. 전립선때문인데 소변이 안나온다고 병원을 보내달라고 하소연이다. 물론 그 문제때문에 계속 병원은 다녔었고, 입원도 수 차례 했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셔서 병원에 오래 계시질 못한다. 병원 의사, 간호사들이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고 함부로 대한다면서 의료를 거부하고 주사바늘을 뽑아버리는 등 병원에서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변이 안나오면 병원에 갔다가, 병원에 가서는 행패를 부리고...이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병원에서도 이 분에 대한 치료를  못하겠다고 했고, 어제 임의로 퇴원했다. 퇴원한 후 계속해서 소변이 안나온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반 개인병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시립병원이나 국립의료원으로 보내드릴테니까 소변만 뽑고 오세요."

-"싫어요.거긴 안갑니다.개인 병원에 보내주세요."

"그러면 본인 돈 내고 가세요. 노령연금 타는 거 있으니까 그걸로 내시면 되요."

-"얼마나 드는데요?"

"모르죠, 모자르면 다음달 나오는 노령연금까지 다 사용하면 되니까 개인병원으로 가자고요."

병원비를 내야한다는 소리에 아무말 없으시다. 병원을 무료로 다니다보니까 아무데나 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결국 병원에도 가지 않고 소변만 나오게 해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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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작업    2011/11/01

올해 봄부터 틈틈히 작업해 놓은 나무들을 한 곳으로 모아 놓는 작업이 있었다. 양이 많아서 쉼터내 봉사자들을 신청 받았는데 에상외로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주셔서 어렵쟎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총19명이 참여하여 오전 오후작업으로 일을 거의 끝마쳤다. 겨울동안 뗄 나무는 확보된 셈이다.
둘이 함께 들기도 어려운 나무를 혼자서 옮기는 모습을 보며 아직 건강함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나무는 둘이, 어떤 나무는 줄을 매서 3~4명이 끌어 옮기기도 했다. 수고해 주신 쉼터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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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욕하며 나가라고 해서    2011/11/05

78세의 조XX할아버지. 아내가 돈 안 벌어온다고 하도 욕을 하며 집 나가라고 해서 왔다고 한다.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작년에도 쉼터에서 한달 반 정도 계시다가 집에서 모셔간 적이 있다. 집에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서 통화를 한 후 입소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안마기술이 있어서 계속해온 모양인데 나이가 들면서 그 마저도 일할 거리가 없다고 한다. 노령연금이 나오냐는 말에 집이 40평, 36평되는 게 두 채나 되지만 모두 아내 명의로 되어 있다고 한다. 친자식들은 없고 양딸과 사위가 있지만 베트남에 해외출장중이어서 5년 뒤에나 돌아온다고 한다. 아내되시는 분과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힘으로도 안 되시는 모양이다. 차라리 이혼이라도 해주면 노령연금이라도 탈텐데, 위자료때문에 그럴까? 그 마저도 안 해준다고 한다.
연세가 많아서 섣불리 입소를 받기가 어렵다고 하니, 차라리 자살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얘기를 들어보니 답답하다. 뻔히 가족이 있고 집이 있는데 쉼터에 도움을 구하고 있으니. 이렇게 집이 있는데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런 분들이 얼마나 될까? 정말 가족들이 책임져야 할 분을 사회가 책임지고 있는 경우들이 너무 많다.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사회복지가 발달하는 나라일수록 가족이 책임져야 할 일을 사회에 미루게 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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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냄새 민원제기    2011/11/16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한 사람이 있다. 내용은 발냄새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발냄새가 나니까 청결하게 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발냄새가 나는 사람이 민원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방사람들이 발냄새때문에 자기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얼마전 구역실장님이 발냄새 때문에 사무실에 오셔서 하소연을 했다. 이번에 방 배치 받으신 분이 너무 발냄새가 심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발을 안 씻는 것 뿐만 아니라 운동화를 너무 안빨아서 운동화자체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는 부분도 있었다.
우리는 이 분에게 다른 신발을 사서 신도록 했지만 돈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운동화를 사서 신으시라고 드렸는데, 남의 도움을 받기 싫다며 거절했다. 그리곤 발을 씻으라고 해도 제대로 씻지 않고 방에 피해를 주는 것이다. 결국 실장님은 이렇게 협조를 안 하면 방에 계실 수 없다면서 성전에서 주무시도록 했고, 이 분은 발냄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며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담당 공무원은 발냄새가 나서 민원을 제기한 줄 알고 우리 시설로 전화를 한 것이다.
정신병원에서 생활한 경력도 있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극히 정상이라 생각하며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 치료차 병원에 갈 때도 차비가 필요없다면 1시간 넘는 거리를 걸어서 다니고 있다. 남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은 거야 그렇다치고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는데 본인의 잘못된 점을 고치기는 커녕 오히려 민원을 제기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혼자 살면야 씻든지 안씻든지 누가 뭐라고 하랴만 공동체에 속한 이상 자기 맘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할텐데 그런것 조차도 안되는지. 하여간 오늘도 자기가 제기한 민원때문에 서울시에 들어갔다. 담당 공무원들도 답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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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병에 효자 없다.    2011/11/22

11월 4일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사망한 홍XX씨(39세)가 있다. 박원순시장이 조문을 가서 유명해진 분이기도 하다. 홍XX씨가 사망한 다음 날 서울시에서 우리 쉼터로 요청이 들어왔다. 홍XX씨에 대한 자료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에 비로소 이분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작년 5월 말에 일주일 정도 계셨던 기록이 있었다.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입원하고자 찾아왔는데 입원이 쉽지 않았다. 미납금이 있었기 때문인데 아마도 개인적으로 병원을 이용하고 돈이 없으니까 그냥 퇴원한 모양이다. 그런 기록이 있으면 시설에서 보내줘도 병원을 이용할 수가 없다. 결국 병원이용을 할 수 없자 자진 퇴소를 했었다. 그게 작년 6월 7일이었다.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는 없다. 아마 노숙을 계속했을 수도 있고, 다른 시설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전에도 다시서기나 은평의 마을을 이용한 경력이 있다.
서울시장의 조문으로 인해 매스컴에 보도된 후 본 쉼터에도 인터뷰요청이 몇 건 들어왔다. 한 방송사에서는 이분이 왜 죽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인터뷰에 응할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스컴은 오로지 이슈화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생각밖에는 안한다.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부나 사회시스템을 한탄하고 책망하기 바쁘다.
하지만 노숙인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 사망한 홍XX씨에게는 부친이 살아계신다. 그리고 5남매중 넷째이다. 아마 친척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과의 관계가 다 끊어진 상태다. 노숙인 치고 가족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가족이 있어도 가족과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연락을 안한지 1년, 5년, 10년, 20년이 넘는다. 그렇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1차적으로는 본인 책임이요, 2차적으로는 가족의 책임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신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남편, 내 아들, 내 형님이나 동생, 내 친척, 내 이웃 중 누군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제3자의 책임으로 떠 넘기려 한다. 가족도 없고, 이웃도 없고, 형제, 친척도 없기에 노숙을 한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린다.
어려운 사람 한 번 돕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에게 있는 더 큰 어려움은 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그건 매일해야 하는 일이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속담이 있다. 정말 옳은 말이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을 뒷바라지 하는 것은 노숙인 시설에 가서 한 두 번 봉사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다. 오늘도 가족관계가 끊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가출을 해도 1년이고 2년이고 찾지 않는다. 아예 소식을 모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들을 한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전화가 오면 통화도 안하려 한다.
어제 70이 넘은 할아버지 한 분이 입소하러 오셨다. 혼자 살다가 힘들어서 입소하고 싶어 했다. 가족이 있냐고 하니, 아들 둘의 전화번호를 가르쳐준다. 장남에게 전화를 하고, 시설에 입소하고 싶어한다고 하니까 회의중이라며 나중에 하라고 한다. 둘째에게 전화를 하니까 역시 바쁘다면 나중에 전화하라고 한다. 요즘 사정이 다 이렇다. 아마 그들도 남을 돕는다고 가끔 기부를 하거나 봉사를 하러 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기까지를 가족들의 책임으로만 넘길수는 없다. 오랜 기간 병이나 치매나, 알코올이 있는 가족을 책임지다보면 한계가 오는 법이다. 어떤 분은 젊어서 조강지처와 자식들을 버려두고 바람핀 과거도 있다. 또 어떤 분은 도박에 재산을 탕진한 분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업실패와 산더미 같은 빚으로 온 가족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분도 있다. 그걸 알기에 누구의 탓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보다 우리는 이러한 사태를 막으려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남의 탓으로 미루다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더우기 일회성 이벤트로 이런 사태를 접근해서도 안된다. 그걸 대단한 것처럼 보도해서도 안된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세상엔 많이 있다. 이름도 없이 가족을 돌보는 평범한사람들이다. 이혼율 40%가 말해주듯이 이제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곧 사회를 돕는 일이요, 큰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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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모는 인권    2011/11/23

양병X씨(55세)가 오랜 방황끝에 재입소를 했다. 간간이 식사를 하러 오긴 했지만 어디서 뭘 하는지 입소를 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분이어서 입소를 여러차례 권했지만 할일이 있다면서 한사코 입소를 거부했었다. 그러다가 날씨가 추워지고 몸이 안좋아지면서 며칠전 입소를 했다. 입소후 보건소건강검진이 오늘 있었고 결핵검진결과 심각한 결핵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소에서는 잠시라도 같이 생활하면 안 된다면서 빨리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보건소에서 곧바로 시립서북병원으로 이동했고, 입원이 결정되었다. 문제는 양병X씨가 한사코 입원을 안하겠다는 것이다. 한참을 옥신각신했지만 자신이 괜찮다는데 왜 입원을 하라고 하냐며 항의했다. 결국 입원을 못하고 쉼터로 돌아왔고 쉼터에서도 한참을 설득했지만 치료를 거절했다.

"내가 괜찮다는데 왜 입원을 하라고 합니까? 의사들이 겉에 상처난 거나 치료하고 그러지, 속에 폐가 잘 못되었다는 걸 어떻게 압니까? 전에는 좀 몸이 안좋아서 여기 왔는데 며칠 쉬니까 좋아졌습니다. 내가 괜찮다는데...내 발로 들어왔으니까 차라리 내 발로 나가겠습니다."

전보다 몸이 많이 야위었다. 정신적인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심각한 상황이고, 결핵 몇기인지 모르지만 저 상태라면 얼마 살기 힘들 것같다.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아서 강제 입원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하지만 시립서북병원에 폐쇄병동이 없어진지 오래라고 한다. 인권문제때문에 폐쇄병동을 운영할 수가 없고, 입원했더라도 퇴원하겠다면 퇴원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인권이다. 거리에 병들어 노숙을 하고 있어도 본인이 치료받기 싫다면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게 요즘 말하는 인권이다. 양병X씨는 심각한 정신질환에, 심각한 결핵까지 앓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해서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차라리 의사표현이라도 못하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자신이 꽤나 잘난 줄 안다. 결국 스스로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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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사이 세 분 사망  2011/11/23

지난 11월 13일 폐암과 쇼크로 오차X씨가 국립의료원에서 돌아가셨다. 다음 다음날인 15일 함진X씨가 전립선암으로 돌아가셨고, 오늘 임병X씨가 호흡곤란으로 돌아가셨다. 세분중 두 분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몸이 좀 안좋다고 해서 병원에 가셨다가 호흡곤란으로 심폐소생술 끝에 사망하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설들에서는 건강이 안좋거나, 나이가 많은 분들을 받지 않는다. 언제 응급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60세 ,65세 나이를 기준으로 받지 않는 시설도 많다.
우리도 마음같아선 나이제한을 두고 싶다. 70세가 넘는 분들이 찾아올때면 돌아가실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입소를 받는다. 하지만 노숙을 하다가 찾아온 분들을 나이때문에 돌려보낼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응급사태도 자주 벌어지고 사망처리도 자주 해야 한다. 보호자를 찾지 못해서 애먹는 경우부터 시작해서, 119를 타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녀야 하는 경우까지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바람이 있다면 이런 상황이 닥쳤을때 일처리가 좀 더 쉬워졌으면 하는 것이다.
다행히 오늘 돌아가신 임병X씨는 아들이 있었고 수소문 끝에 아들과 연락이 되어서 가족들이 책임지게 되었다. 8년가까이 여기서 생활했으니, 진짜 가족은 우리가 아닐까 싶다. 부디 하나님의 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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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 할머님의 눈물    2011/11/24

윤XX(49세)씨가 119에 의해 쉼터에 왔다. 거의 인사불성에 몸이 말이 아니었다. 허벅지는 노숙을 하며 바지에 쓸렸는지 상처가 심하게 나 있었고, 얼굴은 흑색같이 변해 있었다. 다리는 붓고 거동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상태였다. 그런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이리로 데려왔다. 아마 병원에서 안 받아준 모양이다.
상담을 하면서 기억력이 상당히 감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집이 어디인지, 가족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XX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점이다. 본인 말로는 술도 먹지 않는다는데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의아했다. 하지만 입원해있던 병원을 통해 가족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이분에 대한 진상이 밝혀졌다.
심각한 알코올중독이다. 그리고 알코올로 인한 치매상태다. 50도 안된 나이에 어떻게 그럴까? 수십년간 술에 쩔어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와 연락이 되어서 쉼터에 오셨지만 정작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같이 살 엄두가 안난다는 것이다. 4개월전 알코올로 인해 XX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들을 퇴원시켰다고 한다. 1년 넘게 병원에 있는 것이 안스럽고, 많이 좋아진거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또 다시 술을 먹기 시작했고, 그 뒤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연락을 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여기 있게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여기는 개방되어 있어서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또 나갈 수 있고, 다시 행방불명 될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걸 권했고 그렇게 해달라고 하셨다. 말씀을 하는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너문 안쓰러워 보였다. 웬만하면 아들을 모시고 가라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81세의 나이에 당신 자신을 책임지는 것도 힘들텐데 알코올성 치매까지 걸린 분을 어찌 데리고 있겠는가?
계단을 내려가시면서 이제 어디서 전화만 와도 겁이난다고 하신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들때문에 한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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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사(‘청량리 588’ 희망 1번지로… 노숙자·부랑인과 25년 김도진 목사)    2011/11/26

국민일보(2011.11.23)

‘청량리 588’. 한때 세상의 가장 어둡고 낮은 곳을 의미하는 주소지였다. 윤락가와 우범지대로 대변되던 이곳에서 지난 25년 동안 노숙자, 출소자, 부랑인들의 아버지로 살고 있는 김도진(74·가나안교회) 목사. 그는 매일 서울역과 청량리역의 노숙인들을 만나러 간다. “힘들면 여기로 찾아와라 함께 살자. 나를 변화시킨 큰 형님(예수님) 이야기 해 줄게” 노숙인들에게 쉼터 입소를 권하는 그의 목소리는 투박하지만 형이 동생에게 말하듯 따뜻했다.

그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는 노숙인들을 인도하는 곳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속칭 청량리 588)에 있는 가나안교회 쉼터다.

사업 실패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자, 출소 후 오갈 데 없는 자, 가족들에게 버림 받은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현재 200여명이 살고 있으며 그동안 1만여명이 이곳에서 쉼을 얻었다.

“그들은 인생의 반전드라마를 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주고 복음을 넣어주면 이들의 삶이 바뀝니다.” 김 목사는 누구보다도 어둡고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이들의 심정을 잘 안다.

빛의 자녀로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김성숙옹이 그의 할아버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거지왕초, 깡패, 칼잡이, 알코올중독 등으로 얼룩진 ‘어둠의 자녀’로 살았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빚쟁이들을 피해 숨어든 기도원에서였다. 1979년 건축업을 하다 사기를 당했다. 사기꾼 일당을 찾기 위해 칼을 품고 찾으러 다녔다. 독기를 품은 남편을 보다 못한 아내가 남편을 기도원으로 이끌었다.

부흥회 사흘째 되던 날, 설교가 듣기 싫어 뒤돌아 앉아 있었다. 그때 강사가 “저 뒤에 돌아앉은 사람 뭐하는 사람이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평소 성격이라면 욕하고 나가 버렸을 텐데 온몸에 전기를 맞은 것 같이 꼼짝하지 못했다. 강사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다. 순간 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강한 빛을 받고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 환상 중에 십자가를 지고 언덕 위를 오르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너무나 위엄 있고 인자한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란 고백을 했다. 아주 짧은 순간, 42년간 지은 온갖 죄가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떼굴떼굴 뒹굴며 통회하는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고 그동안 지은 죄의 용서를 구하듯 예배와 봉사의 시간을 보냈다. 80년, 44세에 기독신학교(현 백석대학)에 입학해 신학생이 됐다.

“청량리로 가라”

처음부터 청량리 588에서 목회할 생각은 없었다. 신학대학원 졸업을 1년 앞둔 86년, 기도 중에 “청량리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곳에서 살아나오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15평 정도의 작은 예배당에서 혼자 새벽예배와 철야예배를 드렸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동네 깡패들이었다. 이들은 교회의 집기를 부수고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폭행했다. “어둠의 세계에 단련됐기에 견딜 수 있었지요. 매일 아침 ‘아, 주님 오늘도 살았습니다’ 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7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청량리 지역 조직폭력의 중간보스가 찾아와 역전에 있는 청다방으로 오라고 했다. 집사 두 명을 대동하고 긴장하며 들어갔다. 놀랍게도 청량리에서 구두닦이, 껌팔이를 하며 성장한 이들이 동우회를 만들어 일일찻집을 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모금한 400만원을 그에게 주며 “가나안교회가 진정으로 어려운 이웃을 보살펴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동네깡패로 살았던 이들은 이후 청량리 역전 자율방범대를 발족해 동네를 순찰했다.

빈민의 집

96년 윤락가 포주들과의 마찰도 어느 정도 진정될 무렵이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두 번째 결단을 요구하셨다.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