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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7월~09월 쉼터일기

페이지 정보

조회 : 634회 작성일 : 21-05-25 09:47

본문

집단음주  2008/07/02

오랜만에 집단음주사태가 벌어졌다. 항상 월급탈때가 문제다. 한달동안 자활근로를 한 것에 대한 월급이 지난주에 지급되었다. 요즘엔 월급을 타면 방에서 회식을 하거나 나가서 회식들을 하곤 한다. 이번에도 같은방 사람 네명이 모여 밖으로 회식을 하러 나갔다. 처음에야 간단히 먹고 올 생각이었겠지만 그게 어디 자기맘대로 되겠는가? 분위기도 좋아지고 의견도 일치하고 하다보니 술을 먹기 시작했고 월급탄 돈을 다 쓸때까지 술을 마시고는 차마 쉼터에 들어오지 못하고 외박을 했다.

결국 사무실에서 그 일을 알아버리는 바람에 조치를 하게 되었고 주도한 한 사람은 퇴소조치를, 나머지 사람들은 전방조치를 했다.  사무실에서는 술먹는 자를 가려내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곳에 남아있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기회와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스스로 결단하고 옛습성을 버릴 기회를 주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언제까지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음주문제가 집단적으로 일어나거나 술을 먹고 쉼터에 와서 행패를 부리면 우리도 어쩔도리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선을 위하여 사용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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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마다 만원    2008/07/02

백현X씨 증세가 날이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정신분열이 심각했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눈에 띄게 증세가 심각해 지고 있다. 게다가 백현X씨의 증세는 폭력적인 부분이 있어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병원 입원 경력도 많이 있어서 병원에 안가려고 하고 인권문제때문에 병원에 입원시켜도 나간다고 때쓰면 내보낼 수밖에 없어서 애로사항이 많다.

며칠전 증세가 많이 심해져서 강제로 차를 태워서 은평시립 정신과에 갔다. 하지만 병실이 없다고 한다. 보라매,동부시립병원에 갔지만 마찬가지 얘기다. 결국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경남 진주병원에 부탁을 해서 강제 입원을 시킬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날이 더워지니까 이상해지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이곳에서 사역을 하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은 알콜과 정신질환 문제가 날씨와 관련이 많다는 것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정신질환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고 날씨가 궃거나 비가오면 알콜증세가 심해진다. 비가오는 날이면 술을 먹고 영락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날씨가 안좋으면 오늘은 또 누가 오려나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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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룡이 아저씨(목통증)    2008/07/03

3년전 삼용이 아저씨가 목이 아프다고 올라왔다. 목디스크인것 같았다. 오랜노숙기간동안 딱딱한 땅바닥에서 잠을 자왔었고 쉼터에 입소해 있는동안도 방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성전의자에서 잠을 자는 것이 태반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목 뒷부분이 굳어지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맞고 오면 조금 나아지긴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 횟수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매일같이 주사 맞으러 가겠다고 사무실에 올라온다.

진통제나 주사가 근본적인 치료책이 될 수 없기에 가급적 안보내려고 하는데 하루에도 열댓번씩 와서 통증을 호소하다보니 우리로서도 안보낼수가 없다. 우슬초글로벌 선교사님의 말씀으로는 목뒷부분이 너무 많이 굳어 있어서 그렇다고 풀어주어야 한다고 하신다. 돌침을 가지고 굳어진 혈을 풀어주는데 생각보다 아프다. 그래서 그런지 한번 맞고는 안맞으려 한다. 오늘도 진통제를 맞으러 병원에 갔는데 좀 아프더라도 목부분을 풀어주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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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용이 아저씨(특송)  2008/07/03

오랜만에 삼용이 아저씨가 특송을 했다. 처음은 아니고 가끔 특송을 한다. 찬양반주기에 맞추어 특송을 하는데 신청곡은 147장이었다. 하지만 이곡은 잘 모르는 것이어서 411장을 틀어주었다. 물론 노래도 모르고, 글도 모른다. 가끔은 찬송가도 거꾸로 들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을 못하는 벙어리다. 하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데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우~우' 하며 4절까지 진지하게 부른다. 특송을 하는 동안 듣고 있던 성도들이 함께 찬양을 하고, 특송이 마치자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나온다.  비록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찬양을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중심을 아시고 받으셨으리라 믿는다. 또한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땅에서는 할 수 없었던 그 목소리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이사야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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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6천6백만원    2008/07/11

얼마전 입소한 박XX씨는 시장에서 20여년간 일을 하며 나름대로 성실히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3년전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3주전 입원해 계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나온 병원비가  6600만원.... 하는 수 없이 집을 팔아 5천만원을 갚고 우리 쉼터에 입소했다. 아직도 남은 갚아야 할 돈이 1600만원정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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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사"암흑같은 588에 희망의 빛"-2008.06.12    2008/07/11

암흑같은 588에 희망의 빛, 노숙인 천여명 가슴에 품다
가나안교회 김도진목사(특수선교부문)

참 목회자

30여년 전 그늘지고 칠흑 같은 어두운 곳, 범법으로 얼룩진 소외된 군상들이 서로 모여 아귀다툼을 벌이며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곳, 이거리가 서울의 홍등가였다. 윤락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인들과 그들에게 기생하여 생존하는 깡패 등 삶의 처절함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 그 주변에는 삶에 지치고 세상살이 치열함에 낙오되어 거리의 한 구석으로 떠밀려온 부랑자와 노숙인들이 모여 뒤엉킨 거리가 청량리 588이다. 지금은 도시개발 사업으로 역사 속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그 어두운 역사 속 중심에, 모두가 외면했던 그들을 위해 헌신적인 희생으로 그들의 따뜻한 친구, 부모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비번을 품고 갱생의 삶으로 인도한 ‘가나안 교회’ 김도진 목사가 있다 

어둠의 거리 청량리 588에 유난히 빛나는 십자가 하나, "빈손으로 가는 삶의 마지막 길목에 재물은 필요 없다"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이 명한 최선의 사역이라고 말하는 김도진목사가 있다.

1936년 일본 나고야에서 출생해 해방 후 선친들이 살던 경남 함안에서 자란 김도진목사는 독립군가정에서 태어나 항상 애국심을 되새기며 자라왔으나 거리의 부랑아로 떠돌다가 40을 넘기고서야 결혼하여 아내의 권유로 참석한 부흥성회를 통해 하나님을 영접했다. "당시 그 곳에서는 '부흥성회'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부흥성회와는 상관없는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주여 삼창을 외치는 순간 눈앞에 밝은 빛이 내리며 예수님의 형상이 보였고 나는 그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다. 그러자 주님은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그 후 교회를 나가며 자신이 겪었던 평강과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새벽기도를 나가며 밥 먹는 시간조차도 옆에 성경을 두고 읽으며 하루 24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 후 신학공부를 시작하여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으로 51세에 전 과정을 마쳤다.

졸업 1년을 앞둔 어느 날, 김 목사는 새벽기도를 하던 중 '청량리로 빨리 가라'는 음성에 순종하여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 수십 년이라 긴 세월을 철야로 교회를 떠나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후 많은 열매가 맺히고 교회는 성장하여 출석 인원이 현재 200명이고 실제 급식을 받는 인원은 1,000여명이 넘는다. 김목사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활력이 넘친다.

"노숙인들이 쉼터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라며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 필요한 곳에 채워주시니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쉼터 운영에 필요한 재정도 주님께서 넉넉히 마련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김목사는 한국의 많은 노숙인의 희망이 되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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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라인 뉴스06월호-암흑 같은 청량리 588 사창가에 세워진 희망의 빛    2008/07/11

참 목회자

30여년 전 그늘지고 칠흑 같은 어두운 곳, 범법으로 얼룩진 소외된 군상들이 서로 모여 아귀다툼을 벌이며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곳, 이거리가 서울의 홍등가였다. 윤락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인들과 그들에게 기생하여 생존하는 깡패 등 삶의 처절함을 느끼게 하는 곳으로 그 주변에는 삶에 지치고 세상살이 치열함에 낙오되어 거리의 한 구석으로 떠밀려온 부랑자와 노숙인들이 모여 뒤엉킨 거리가 청량리 588이다. 지금은 도시개발 사업으로 역사 속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그 어두운 역사 속 중심에, 모두가 외면했던 그들을 위해 헌신적인 희생으로 그들의 따뜻한 친구, 부모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비번을 품고 갱생의 삶으로 인도한 ‘가나안 교회’ 김도진 목사가 있다   
임완철 국장 lim@iheadlinenews.kr

암흑 같은 청량리 588 사창가에 세워진 희망의 빛

‘가나안 교회’ 김도진 목사

“어떤 사람이라도 주님의 성령 불이 들어가면 새 생명으로 변화 된다.”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 어둠의 거리 청량리 588에 유난히 빛나는 십자가 하나가 우뚝 서있다. “빈손으로 가는 삶의 마지막 길목에 재물은 필요 없다”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라는 하나님의 사역을 마치고 가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김 도진 목사이다. 거리를 전전하고

거지로 살았던 천하의 막건달 ‘짱돌’

1936년 일본 나고야에서 출생해 해방 후 선친들이 계신 경남 함안에서 자라난 김도진 목사는 8살에 여의게 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으로 인한 형제들의 죽음, 그리고 당시 서툰 한국어로 인한 타향살이 속 친구들의 따돌림은 그의 가슴에 한을 맺히게 한다.

그 한은 20대에 막 들어선 청년시절 발생한 4.19혁명의 의거활동으로 표출된다. 싸움과 술로 살아온 건달이었지만, 독립군 가정에서 태어나 항상 애국정신을 들으며 자라온 김 목사는 당시의 정치상황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 김 목사에게는 수배령이 내려졌고, 위기를 피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입대였다. 하지만 제대 후 김 목사에게 주어진 현실은 혼란과 방황 그 자체였다.

내일에 대한 기약 없는 삶을 살았다는 김 목사는 “나는 갈 곳도, 의미도, 목적도 없었다”며 “싸움꾼으로 사람들과 싸우며 술을 마시고, 그러다 수배령이 내려지면 거지 행색을 하며 다리 밑으로 들어가 은신했던 것이 당시 내 삶의 전부였다”고 말한다. 덧붙여 김 목사는 “조직에 몸담지는 않았지만 부산 짱돌로 불리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청해 따랐다”며 “그렇기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손에 넣기도 하고 충분히 다른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거지생활로 불편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생활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시 내가 직접 경험했던 심정이기에 지금 노숙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인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김 목사는 43세,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20여년의 세월을 폭력과 술을 벗 삼아 무의미한 삶을 살았다. 이런 무가치한 삶을 반복했던 오빠를 걱정한 김 목사의 동생은 김 목사에게 결혼상대를 소개한다. “40여년의 세월을 어둠속에서 살아온 나였기에 지금의 부인을 만났을 때 모든 것을 말하고 자신과 결혼해선 안 된다고 말했지만 부인은 내 곁에 남는 것을 택했다”며 “현재 삶의 빛을 알고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임하게 만들어준 부인에게 감사하다”고 김 목사는 말한다.

이후 김 목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변화된 모습을 보이며 살았지만, 건축업을 하면서 믿었던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회복할 수 없는 현실에 김 목사는 사기꾼 일당을 찾아 죽이고 내가 자살하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가슴에 칼을 품고 그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식음을 전폐하고 그들을 찾아다니던 김 목사는 결국 거리에 쓰러지고 만다. 이후 김 목사는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만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있는 가족들을 보게 된다. “아이들은 기가 죽어 있었고, 가재도구는 모두 마당에 나와 있었다”여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온 가족의 행복이 한순간에 달아난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했던 김 목사는 가족과 이웃 권유로 삼각산 ‘다락방 기도원’으로 향한다. 김 목사는 “당시 그 곳에서는 ‘부흥성회’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부흥성회와는 상관없는 생활을 했다”며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주님 삼창을 외치는 부흥성회가 이루어지는 방 끝트머리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 순간 눈앞에 밝은 빛이 내리며 예수님의 형상이 보였고, 나는 그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다. 그러자 주님은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한다.

김 목사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내가 어려웠던 해방직후와 6.25사변을 겪으며 고등학교까지 마쳤던 것과 매일같이 칼을 들고 싸움을 했지만, 몸에 흉터하나 없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인도였다”고 말한다.

청량리 588에 교회를 세우다
이후 김 목사는 표현할 수 없는 평강을 느끼며 평생을 악과 더불어 살았던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칼을 버리고 내 인생 다시 살리라’라고 다짐한다. 그 후 교회를 나가며 자신이 겪었던 평강과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새벽기도를 나가며 밥 먹는 시간조차도 옆에 성경을 두고 읽으며, 하루 24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 후 다시 찾은 삼각산에서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눈 사람이 김 목사를 보며 “신학교를 가라”며 사정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고 한다. 김 목사는 “집에 와 성경을 보는데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서 왕으로 삼는 말씀을 보며 순간 소명의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내 나이 44살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 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학교로 인도하는 목사님을 만나고, 학교졸업 증명서 받기 위해 고향집에 보낸 편지가 계기가 돼, 사정을 알게 된 집에서 등록금과 졸업증명서를 보내와 김 목사는 낮에는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으로 51세에 전 과정을 마쳤다.

졸업 1년을 앞둔 어느 날, 김 목사는 새벽기도를 하던 중 ‘청량리로 빨리 가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당시에는 청량리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의아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밝은 빛이 가장 필요한 곳은 바로 가장 어두운 곳이다”며 “그렇기에 하나님이 쾌락과 그늘만이 존재했던 청량리 588로 자신을 보낸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작정 청량리로 온 김 목사는 밤이 되도록 다녀보았지만 어느 한 곳 머물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시외버스 후문 옆에 있는 가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 사정을 이야기 하고 “불량배를 선도하기 위해 왔다”고 하니 그곳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한 사람이 “‘자신들이 성전을 계약해 주겠다’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새마을 지도자로 인근 불량배들의 선도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던 찰나였다”며 당시 ‘가나안교회’를 세우게 된 기적 같은 일화를 말한다.

하지만 계약해 준 곳은 3층은 절이었으며 지하실은 깡패들 소굴이었다. 전도를 하기위해 그들에게 다가갔지만 그들은 “죽이겠다는 말을 하며 교회를 왜 이곳에 세웠냐고 협박했다. 나날이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곳에서 내 사역을 다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과 맞서 싸우며 인도했다”며 “교회를 지키기 위해 10년이란 긴 세월을 철야로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교회는 전도의 대상이었던 불량배들과 전과자, 그리고 200여명 노숙인들의 숙소로, 1000여명의 무료급식소가 됐다”고 말한다.

가나안쉼터를 위해
‘가나안 교회’ 지붕 아래에는 200여 명의 노숙인, 장애인, 무의탁노인들이 서로를 벗 삼아 살고 있다. 또 매일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면 교회는 1,000여명의 거리 부랑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가나안 쉼터에는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안타까운 우리 이웃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위해 칠순이 넘은 김도진 목사는 아직도 두 손을 걷고 그들을 위해 밥주걱을 들고 있다.

김 목사는 “밥을 퍼주고 잠잘 곳을 주는 것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며 “쉼터 형제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 목숨까지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가나안 쉼터’에 생활 중인 형제들은 노숙인 이었다는 것이 무색하게 모두가 땀 흘리며 일하며, 재기하고자 노력하는 기적을 보이고 있다.

김 목사는 기억에 남는 형제를 묻는 질문에 “32년간의 긴 감옥생활 후 다시는 교도소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신과 3년간 예배드리며 살아온 형제가 있었다” 며 “그러나 감정을 억제치 못하고 또 다시 폭력을 가해 19범의 살인자가 됐다. 그 후 그동안 벌어 저금한 돈 47만원을 주며 ‘목사님의 어려운 사역에 보태’라고 말하던 형제의 소식을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노숙인, 1000여명에게 하루 세 끼 모두를 무료 급식하고 있는 ‘가나안 쉼터’는 사실 교회 월세 내기에도 빠듯한 형편이다. 정부에서 쉼터 소속 노숙인에게 1인당 하루 2600원씩의 식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소속된 인원은 200여 명이고 실제 급식을 받는 인원은, 1000여명이 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노숙인들이 생활에 필요한 여러 공과금을 생각한다면 실제 교회에서 안고 있는 부담은 크다. 하지만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월세를 사고 있다는 김 목사는 “노숙인들이 쉼터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라며 “하나님은 필요한 만큼 필요한 곳에 채워주신다. 쉼터 운영에 필요한 재정도 주님께서 넉넉히 마련해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참 목회자이다. 덧붙여 김 목사는 평생을 희생한 삶의 후회는 없는가라는 질문에 “전국에 4만 여 개의 교회가 있다. 한 곳의 교회에서 단 한명의 노숙인을 보살펴준다면 한국의 노숙인은 없어질 것”이라며 “나는 폭력을 일삼던 실패자였다. 하지만 1원의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는 한 명의 사람을 보살피고 모으는 것이 자신에게도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예전에 택시를 타면 험상궂은 외모로 간혹 택시 기사가 요금을 받지 않았는데, 요즘엔 내 얼굴을 보면 좋은 일한다면서 요금을 받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농담처럼 말하며 웃는 김 목사의 경험담처럼 그의 인생이 180도 변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김 목사는 말한다. “쓸모없는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며 창조주는 재생하실 수도 있다”며 “나를 변화시킨 하나님은 다른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모든 세상 존재들은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고 말한다.

부산의 짱돌로 불리며 폭력을 일삼았던 거지행색의 초라했던 건달이 이제는 노숙인의 대부가 되어 그늘진 청량이 588의 예수가 됐다. 김도진 목사의 “이 땅에 버림받은 자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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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midas 7월호-청량이 588에 피어난 희망의 불꽃    2008/07/11

연합뉴스 midas-청량이 588에 피어난 희망의 불꽃

His & Her story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전한다

청량이 588에 피어난 희망의 불꽃

가나안교회 목사
김도진

서울의 대표적 집장촌인 세칭 ‘청량이 588’ 일대에서 2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사회에서 버림받은 노숙자와 부랑아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청량리 윤락가 한복판에서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는 김도진 목사는 주먹으로 얼룩진 자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오늘도 노숙자들의 대부로서 이들의 자활의지를 북돋우고 있다.

다시 태어난 인생
김도진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가나안교회는 200여 명의 노숙자, 장애인, 무의탁 노인들이 서로를 벗 삼아 살고 있다. 매일 아침과 점심, 저녁시간이 되면 교회는 1천여 명의 부랑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들을 위해 칠순이 넘은 김도진 목사는 아직도 두 손을 걷고 그들을 위해 밥주걱을 들고 있다.

김 목사가 사회에서 버려진 이들을 위해 봉사의 사역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물음에 그는 “나도 노숙자였고, 실패자였고, 버림받은 자 였습니다” 라는 답으로 모든 궁금증을 일축했다.

김 목사는 비록 조직에 몸을 담지는 않았지만 부산의 짱돌로 불리며 청년시절을 보냈다. 싸움꾼으로 사람들과 싸우며 술을 마시고, 수배령이 내려지면 거지 행색을 하며 다리 밑으로 들어가 은신하며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많은 사람이 따라다녔던 터라 엄청난 액수의 돈을 손에 넣기도 했으나 이미 익숙해진 거지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그는 생활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가족은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독교 신자인 여성과의 결혼을 주선했고, 그 결혼을 통해 김 목사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오래 가지 못했다. 건축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한 것이다. 동업자들도 모두 망하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회복할 기미가 없었던 그는 사기꾼 일당을 죽이고 자신이 자살하는 길을 선택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단도칼을 가슴에 품고 사기꾼 일당을 찾아 돌아다니길 한 달 남짓 그는 거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방황으로 더 힘든 나날을 보내는 가족을 발견하게 된다.

그날 이후 자신감을 잃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이웃 사람들이 ‘산으로 바람이나 쐬뢰 가자’라고 권유하여 길을 따라 나섰는데 그곳은 삼각산 ‘다락방 기도원’ 이었다. 표현할 수 없는 평강을 느낀 그는, 자신이 겪었던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새벽 기도를 나가며 하루 24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또한 그는 44살,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어려움에도 신학교 입학을 결심하였고 낮에는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통해 51살에 전 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노숙자의 대부
졸업을 1년 앞둔 어느 날 사역지를 놓고 매일 새벽 기도를 하던 그는 ‘청량리로 빨리 가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불량배를 선도하기 위해 왔다”며 복덕방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자 복덕방 주인은 “내가 그 성전을 계약해주겠다”라며 김 목사의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 복덕방 주인은 지역의 새마을지도자로 인근 불량배들의 선도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김 목사를 만나게 된 것이며, 그는 3층은 절이며 지하실은 깡패소굴인 곳에 계약을 해주었다. 전도의 대상자가 전과자, 부랑인들이었고 교회는 이들의 집합소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교회를 지키기 위해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철야 기도를 하면서 교회를 떠나지 않았고 자신에게 협박을 일삼던 그들은 어느새 자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있었다. 올해로 22년 째 사회에서 버림받는 이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김 목사는 ‘노숙자의 대부’로 통한다.

김 목사는 자신을 찾아오는 노숙자나 부랑아, 장애인, 무의탁 노인 등 모든 이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맞이한다. 잠잘 곳이 없는 이들에게는 잠잘 곳을, 먹을 것이 없는 이들에겐 먹을 것을 제공하며 사회에서 버려진 이들이 다시 사회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노력한다.

부모의 마음으로
하루 1천 명의 노숙인 들에게 세 끼 식사를 무료로 급식하고 있는 ‘가나안 쉼터’의 김 목사는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월세를 살고 있다. 30년 가까운 목회자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거처할 곳은 마련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것보다는 한 명의 노숙자를 더 먹이는 일이 중요하다.

“노숙인들이 쉼터를 통해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저 재인의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는 한 명의 사람을 보살피고 모으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폭력을 일삼던 실패자였으나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정한 목회자는 자기의 살을 베어서 불우한 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죽어가는 것처럼 목회자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봅니다”라고 말하는 김 목사를 보며 이 시대 진정한 목회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김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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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인생(구 신앙계)-2008.07월호    2008/07/15

특집2 기적- 김도진 목사 ․ 가나안교회

나를 바꾼 기적이 오늘도 이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뭔 줄 아는가. 바로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기약이 없는 인생, 그저 오늘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 인생이 바로 나였다. 사십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예수가 누군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 내가 누군지도 몰랐던 사람이 예수를 만나 한순간에 변화 받고 목사까지 되어 지금까지 청량리 588을 지키고 사는 것은 분명 기적이다.

나는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해방이 되면서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장티푸스로 어머니를 잃고 마음 기댈 곳이 없어 방황하기 시작했다. 한국말이 어눌한데다 공부에도 취미가 없던 나는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고 집에 가도 따뜻하게 반겨줄 사람 하나 없으니 그저 싸움질만 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4.19 시위에 가담하면서 내 인생은 뒤틀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향 치안을 담당한다는 명목으로 주먹을 휘둘렀고 한번은 나도 모르게 사복 경찰관을 두들겨 패고 말았다. 이 때문에 지명수배가 내려졌고 군에 자원입대하여 이를 모면했다.

시간이 흘러 군에서 제대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는 또다시 건달세계로 돌아갔다. 한번은 다리 밑에 거지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거지 왕초 생활도 했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떠돌이 생활도 했다. 그러다가 친절한 한 아가씨의 도움으로 페인트 기술자가 되었고 그때 예수 믿는 순박한 시골 처녀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 했다고 옛 습관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난 여전히 수중에 돈이 있으면 술 마시러 달려갔고 술만 먹으면 싸움하는 일을 계속했다. 아침에는 두 발로 걸어 나갔다가 밤에는 만취되어 네 발로 기어들어오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차에 마음먹고 시작한 건축업에서 큰 사기를 당했다. 철썩 같이 믿고 주위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투자했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들에게 당한 것이었다.

나는 망했고 나를 믿고 투자한 내 동업자들도 모두 망했다. 나는 도저히 이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하루아침에 빚에 몰리기 시작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았고 아니 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그 사기꾼 세 명을 찾아서 찔러 죽이고 나도 그 자리에서 자살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눈만 뜨면 단도(短刀)를 가슴에 품고 그 사기꾼들을 찾아 헤맸다.

그 사이 집은 보증금도 없이 월 2만 5천원의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으로 이사가게 되었고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했던지 빚쟁이들이 찾아와서는 차마 말도 못하고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 내 모습은 너무 초라했다. 그렇게 도와줬던 친구 어느 누구도 내 곁에 없었다. 내심정은 지옥 딱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 사람들이 산으로 바람이나 쐬러가자고 했다. 마침 마땅히 갈 곳도 없던 나는 따라나섰고 가게 된 곳이 바로 삼각산 다락방 기도원이었다. 가보니까 빚쟁이들의 눈을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나는 그렇게 빚쟁이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기도원에 올랐다. 매일 집회에 참석하기는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강사 목사님을 향해 앉아 있을 때 나는 맨 뒤에 뒤돌아 앉아 ‘어디가면 사기꾼들을 잡을 수 있을까’만을 생각했다.

그날도 기도원에 올라가 여느 때처럼 맨 뒤에 돌아앉아 사기꾼 잡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사 목사님이 “저 뒤에 돌아 앉아 있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냐?”고 고함을 쳤다. 나는 얼떨결에 돌아봤다. 강사 목사님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교만하고 강퍅한 심정을 풀고 두 손을 드시오.” 나는 그 위엄에 눌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들었고 그들이 하는 ‘주여! 삼창’도 따라했다. “주여!”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뜨겁고 강한 빛이 나를 비추더니 나는 그만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스위치를 올렸을 때 순식간에 불이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눈앞에 환상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비쳐졌다. 그분은 내게 너무나 인자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도우리라”

눈물이 솟구쳤다. 그 눈물은 한과 독기를 품고 42년간 온갖 죄만 짓고 살아왔던 내 인생에 대한 회개였다. 그리고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사기꾼들이 죽일 놈이 아니라 내가 죽일 놈이라는 사실! 신기하게도 그 순간에 미움과 분노가 사그러들었고 그 사기꾼들도 용서가 되었다.

나는 이렇게 42세에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꿈속에서조차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지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했다. 그들은 내가 사업에 실패하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며 조롱하기도 하고 걱정도 해줬지만 나는 그 이름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후 예수님은 나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셨고 나 같은 자들을 돌보라고 청량리 588 지역으로 밀어 넣으셨다. 처음 성전을 계약한 곳이 아래로는 깡패 소굴이요, 위로는 무당집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10년을 철야기도하며 순교할 각오로 노숙자들과 전과자들을 섬겼다.

올해로 목회 22년, 평생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밟히고 찢긴 영혼들이 내 곁에 있다. 이들과 함께 한 내 삶은 하루하루가 기적의 연속이었다. 후원 한 푼 없는데 어떻게 하루 1000인분의 밥을 해서 갈 곳 없고 천대받는 노숙자들과 거지들, 전과자들을 먹일 수 있었겠는가. 아무리 내가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내 노트는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 기적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아침이면 가나안 쉼터 식구들이 일터로 향한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교도소를 전전했거나 노숙자 생활을 하던 자들이었다. 그랬던 이들에게 예수가 들어가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람들이 일을 하다니․․․.
게다가 자신들이 땀 흘려 번 돈으로 십일조도 하고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돕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요 싸움꾼, 칼잡이로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디서 비명횡사했을 지도 모를 나를 바꾼 기적이 이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적이 기적을 낳은 현장, 난 지금 그 한복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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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소동    2008/07/16

은평의 마을에서 오신 서XX씨때문에 사무실이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방배치를 해드렸는데 몸이 더러워서 샤워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도록 했다. 잠시후 옷을 갈아입고 올라와서는 황당한 소리를 하셨다. 샤워실앞에 벗어놓은 옷들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옷안에는 지갑과 통장이 있고 지갑안에는 돈도 많다고  했다. 아마도 은평의 마을에서 푼푼히 일을해서 번 돈을 퇴소하면서 받아온 모양이다. 누가 가져갔을지도 모르기에 가서 다 뒤져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가져간것 같았지만 그런경우 지갑만 빼가고 옷은 근처에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옷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했다.

한참후 옷의 진실이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자기 방에다 벗어 놓은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게다가 옷을 누가 가져갈까봐 방에 있던 전상X씨에게 옷을 지키고 있을 것을 부탁까지 해서 전상X씨는 옷을 지키느라 어디가지도 못하고 방에만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번 일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뇌수술 경력때문인지 증상이 심각해 보여서 지갑과 중요물건을 사무실에서 맡아두기로 했다. 혹시 나중에 소지품에 대해 다른 소리를 할까봐 아예 동영상으로 찍어 놓고 각서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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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수사관 홍XX    2008/07/21

지난주 금요일 홍XX씨가 입소하였다. 입소상담부터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정신질환이 심하다고 판단되어 곧바로 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횡설수설은 계속되었다. 전에 정실질환으로 치료받은 적이 있냐고 묻자 5년전에 병원에 다닌 적이 있다고 한다. 반드시 입원시켜야 했기에 혹시라도 모를 난동에 대비해서 2명의 쉼터 도우미가 함께 동행했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홍XX씨의 어깨를 잡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 그는 너무나도 유순한 양처럼 활동하였다. 누가 보더라도 별문제가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사정을 모르던  간호사는 응급으로 올 환자가 아니라며 외래로 가라고 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정신질환이 심하다고 설득하고 부탁하여 응급실에 있도록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후 전문의 한명이 응급실로 왔다. 홍XX씨의 차트를 가지고 왔는데 꽤 두꺼워보였다. 아마도 그의 병력이 오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홍씨가 너무 얌전히 있어서 입원이 안될까봐 노심초사했다. 의사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서울대 병원 주치의 권XX선생을 불러와!"(권선생님은 현재 이 병원 원장이시다)

"여기 왜 오셨어요?"

-"폐쇄병동에 문제가 있는데 수사방해 하지마!"

"가나안교회는 왜 가셨습니까?"

-"현재 대검 수사중인 국가 기밀 사항인데 알면 당신들 다쳐!"

의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곧바로 입원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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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 그리고 삼계탕  2008/07/21

군복무중에는 국방부시계가 일반시계보다 더디게 돌아간다고 한다. 쉼터 사람들이 느끼는 쉼터 시계는 반대다. 쉼터시계는 보통시계보다 빠르게 돌아간다고 한다. "아니 벌써 초복!?"

지난주 토요일 점심식사로 삼계탕이 나왔5다.반계탕도 아니고 온계탕에 디저트로 수박까지 곁들여 졌다. 이 많은 식구들에게 온계탕이라니...불과 1년전에 외부인들에게도 식사를 제공할 때만 해도 이런 호강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흔히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사표현에 인색하다고 한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같은 날에 더욱더 감사하면 곧 다가올 중복과 말복도 기대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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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좋은교회 녹화  2008/08/05

8월 3일 극동방소 "우리교회 좋은교회" 녹화가 하나님의 은혜중에 마쳤다. 가나안교회가 무슨 사역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열매가 어떠한지 소개하는데 촛점을 맞추었고 비록 눈으로 볼 수 없는 라디오 방송이지만 현장감이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쉼터성도님들의 가나안교회 5행시와 정윤권성도의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그리고 박영수집사님의 목사님께 드리는 편지등 감동적인 내용들이 많았고 입소자로만 구성된 시온성가대의 찬양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목사님은 짤막한 말씀을 통하여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사역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말씀하셨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임을 강조하셨다. 이번 가나안교회 MVP는 쉼터에서 생활하시면서 입소자들의 빨래를 도맡아하시고 저녁에는 예배 찬양과 각종 봉사로 수고해주고 계신 김창두집사님이 되셨다. 그 어느 교회 녹화때 보다도 감동이 넘치는 현장이었다. 담당PD는 녹화하는 동안 눈물을 흘렸고 사회를 보는 박상규전도사님 역시 감동의 순간들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이번 녹화된 내용은 8월 16일 12시부터~1시까지 극동방송 FM106.9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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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냄새가 나요  2008/08/05

얼마전 배XX씨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쉼터에 입소하러 왔다. 술을 먹고 온 경우 입소자체가 안되지만 상황이 좀 급했다. 아침에 피를 한움큼 토했다고 한다. 그동안 죽으려고 하루에 술을 열병이상씩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죽게 생기니까 살려달라고 찾아온 것이다. 입소를 시키고 병원에 보내주려고 몇가지 상담을 했다. 그런데 이분은 계속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서 방사람들과 함께 있기가 어렵다는 소리를 했다. 가까이서 상담을 하는데도 술냄새외에는 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부분 이런 경우 정신적인 문제인데, 언제부터 그랬냐는 말에 몇년전 아내와 이혼하고 사창가에서 성관계를 가진 후 부터라고 했다. 아마 그 충격으로 자신이 불결하다고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정신과 치료를 권했지만 정신과문제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전에 정신과의사를 만나보기도 했지만 거기서도 정신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낮에는 좀 덜하는데 밤에 잘때 옆사람이 냄새로 인해 불편해 할 정도라고 하니 좀 황당스럽기도 하다.

가끔 공동체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신체적 문제가 있는 경우들이 있다. 어떤 분은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방 사람들이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면 된다. 결핵이 있어서 공동체생활을 못하는 경우는 결핵병원에 입원이 된다. 술때문에 문제가 되면 알콜치료를 위해 병원에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이 불편을 호소하는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착각속에 살고 있는 사람은 가장 힘든 케이스다. 이런 사람을 망상환자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망상환자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자체를 거부한다. 이번에 이분도 병원에 보내주기는 했지만 퇴원후에도 한 곳에 정착하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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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2008/08/05

쉼터에 있다보면 무지개를 쫓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어찌보면 잡을 것도 같지만 사실은 잡을 수 없는 일들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입소한 김XX씨도 비슷한 처지였다. 김XX씨는 작년에 일터에서 못에 찔려서 파상풍이 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로인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였고 현재는 의족을 한 상태였다. 문제는 회사측에서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을 미루는 바람에 모든 병원비를 김XX씨가 떠안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다른 곳에서 다쳤을지 누가 아느냐는 식이다. 그 문제로 현재 회사측과 소송중인데 다행인지 목격자가 있어서 목격자만 데리고 오면 법으로 쉽게 이길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목격자는 이런 저런 핑계로 증언을 안하고 있는 상태고 그런 상태가 벌써 1년째 지속되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목격자가 200만원정도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경우 대부분 일이 성사되긴 어렵다. 어찌보면 빨리 그 일을 접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게 나은데 이 분은 금방이라도 될 듯이 믿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돈을 구해서 목격자를 세우려고 하는 중이다.

비슷한 사례들이 너무 많다. 한건만 잘 하면 팔자가 바뀔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자신에게 사기친 사람을 잡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번 소송만 잘 되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 명도 그대로 된 적이 없다. 적어도 최근 10년동안에는 말이다.

가장 빠른 길은 가장 빨리 포기하는 길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무지개를 포기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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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  2008/08/08

1999년 8월 교회 수련회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전원 수련회에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직장때문에 못가는 분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쉼터에 남게 되었다.그때 김우철이라는 분도 일때문에 남게 되었는데 목사님은 왠만하면 같이 가자고 하셨었다. 비록 그냥 봐서는 그렇게 험한 사람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분이었지만 김우철씨는 전과가 19범이나 되는 사람이었고 이 곳에 와서 비로소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우리가 수련회를 떠나 있는 동안 일이 터졌는데 노숙인 한명이 김우철씨에게 술을 사달라고 한모양이다.김우철씨는 술을 사줬고 술에 취한 이 노숙인은 계속 김우철씨의 성질을 건드렸다. 결국 화가 끝까지 난 김우철씨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그 사람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심하게 때렸는지 그 사람은 갈비뼈가 다 나간 상태로 죽고 말았다. 여름 수련회가 끝나고 돌아와 보니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경찰서에 가 있었다. 전과 19범이나 되는 사람이 살인을 했으니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목사님이 법정에 가서 김우철씨의 보호인으로써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했다.이 불쌍한 사람을 다시 교도소에 보낸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목사님이 이 사람을 책임지겠다고 하셨다. 당시 법정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하니 상황이 짐작간다.결국 김우철씨는 감호가 붙지 않았고 4년실형이 내려졌다.목사님과 헤어지던 날 그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던 40여만원을 목사님께 드렸다.목사님은 구치소에 수감되면 필요한 걸 쓰라고 했는데 한 사코 목사님을 주면서 가져가시라고 한 모양이다.

그리고 4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3년 6월 26일 목사님은 여느때처럼 청송교도소 집회를 인도하러 가셨다. 그리고 청송에서 김우철씨를 다시  만난것이다. 그동안 목사님은 김우철씨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알고보니 목사님을 뵐 면목이 없다고 본인이 스스로 연락을 끊고 있었다. 김우철씨는 가끔 청송에 집회를 하러 오시는 목사님을 보고 있었다. 김우철씨는 7월에 출소한다고 하면서  출소하면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고 말했다. 목사님은 쉼터로 오라고 권유했고 그렇게 우리와의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교도소를 자기 집 드나들듯이 해오던 분이라 쉼터생활이 쉽지 않았다. 특히나 피해의식이 강해서 무슨 말을 하면 쉽게 상처를 받고는 마음에 담아둔다. 그리곤 술을 먹으면 영락없이 그때일을 꺼내서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쉼터에서도 생활하고, 요양병원에도 가보고, 쪽방에서도 살아봤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도 술이 깨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목사님께 잘못을 빈다.

이제 이런 반복된 생활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엊그제 새벽, 김우철씨(65세)는 쉼터에서 잠자는 모습 그대로 돌아가셨다. 사망원인은 심근경색이라고 하는데 전혀 고통스러운 모습은 없었다. 단지 그 전날 밤, 가슴이 답답하다며 부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했다고 한다. 기도를 받고는 잠이 들었고, 새벽예배 시간에 나오지 않아서 깨우러 갔다가 비로소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전날밤 기도받고 얼마되지 않아 돌아가신 것 같다.

만나면 헤어진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좋은 만남,좋은 헤어짐을 보기란 쉽지 않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김우철씨와의 겪었던 일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감사한 건 만남과 헤어짐 모두 주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오늘 장례를 치른다. 가족들이 있지만 누구하나 오려하지 않는다. 이제 전과20범,살인자라는 명칭이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할 나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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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 "우리교회 좋은교회    2008/08/17

극동방송 "우리교회 좋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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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여기 입소해야지만 밥줍니까?  2008/08/25

점심시간이었다. 한 분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큰 소리를 쳤다.

"아니, 여기 입소해야지만 밥을 줍니까?"

"내가 배고파서 왔는데 입소해야지만 밥을 줍니까?"

설명을 해드리려고 말을 꺼내자

"됐습니다. 세상에 이런법이 어딨어!"하며 나가버린다.

아마 점심을 먹으러 줄을 섰는데 쉼터에 계신분들이 처음보는 사람이라고  입소해야지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한 모양이다. 작년 8월부터 무료급식을 중단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가끔이런 일을 겪는다. 물론 입소자에게 모든것을 지원해 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고파서 온 사람에게 입소 안했다고 해서 안주지는 않는다.  일단 식사를 주고 입소를 권유하는 것이 원칙이고 쉼터 규칙에 대해 말해주는 식으로 하고 있다. 아마 일반 쉼터식구들이 냉정하게 대해서 일어난 일 같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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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인수련회    2008/08/25

8울 15일~16일까지 대성리 너른펜션에서 전교인 수련회가 있었다. 지금까지 갔던 수련회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인 190명이 참여한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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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활센터 지을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8/08/30

올해 81세이신 유용X할아버지께서 올라오셨다. 긴히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며 옆 테이블에 가서 앉으셨다. 벌써 쉼터에 계신지 7년째이지만 이런 모습을 보인적은 없었다.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잠시후 할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전에 건축일을 했었습니다. 큰 회사 건축소장도 했었었는데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지금 이렇게 되었습니다. 가나안교육자활센터를 지을 거라고 하던데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겠습니다. 시공사를 잘못 선택하면 건축비가 많이 들어갈 수 있거든요. 제가 이쪽 분야는 좀 알고 있으니까 건축할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귀도 어둡고 눈도 잘 안 보이고 거동도 불편해서 간단한 일도 하기 힘든 분이신데 앞으로의 쉼터 건축에 대한 비전을 들으시고는 돕겠다고 올라오신 것이다. 말씀만이라고 고맙다. 그때까지 건강히 사셔야 할텐데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고 계신다. 꽉막힌 지하실 방을 벗어나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모실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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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있던 곳이 좋다?  2008/09/02

새벽예배 시간에 담임목사님은 김영X씨에게 샬롬의집으로 가라는 지시를 하셨다. 샬롬의 집은 서울역에 있는 빌라이다. 작년에 SH공사에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어서 2년 임대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쉼터 인원이 많아서 20명정도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담임목사님의 지시를 받은 김영X씨는 이제 30세 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고 외모가 중학생처럼 어려보여서 방에서는 막내로 통한다. 목사님의 지시를 받은 김영X씨는 그날따라 힘없이 일터에서 돌아왔다. 마치 넋나간 사람 같았다. 그러더니 담임목사님과 면담을 하러 올라갔다. 면담내용은 계속 이곳에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싫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이 문제때문에 고민을 했나보다. 목사님은 당연히 그 부탁을 들어주셨다. 비록 우리 쉼터가 시설은 열악하고 불편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이 곳에서 정이 들어서 다른 곳으로 가기 싫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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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남성합창단 연주회    2008/09/03

지난 31일 한국기독남성합창단에서 오셔서 아름다운 찬양으로 함께 해 주셨다. 작년 7월 8일에 이은 1년만의 연주회였다. 한번 갔던 곳은 다시 안가는 것이 원칙이라는데 이렇듯 2번씩이나 방문해 주신 것은 그 만큼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지휘자,반주자를 포함하여 총23분이 오셨고 정해진 곡외에 앵콜곡으로 4곡을 더 해 주셨다. 1시간동안 열의를 다해 찬양을 해 주신 한국기독남성합창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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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다투려간 환자    2008/09/04

30대 중반의 고XX씨가 정신과 전문의를 만났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환청과 환상문제로 왔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런건 상관없습니다. 아무튼 영이니까요"

"그게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여호와 하나님"

"무슨 소리를 들었습니까?"

-"대화도 나누고 텔레파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그런 건 알 필요없습니다."

"환청을 듣고 환상을 보면 어떻습니까?"

-"그건 의사가 알아내야지 환자한테 왜 물어요?"

"언제부터 이런 증세가 있었습니까?"

-"1985년 본드를 흡입할때부터입니다. 그동안 아홉차례 교도소에 들락 거리느라 중단했다가 부탄가스로 바꾸었습니다."

"지금도 흡입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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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비밀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의사들이 법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나 사법고시 공부한 사람이야!"

"도핑 테스트를 해 보아야 겠습니다."

-"피를 왜 뽑아!"

"개관적인 테이터 없이 처방을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검사를 거부하여 더 이상 치료를 하지 못하였다. 쉼터에 와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XX씨는 그로부터 며칠후 쉼터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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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진목사님 미주지역집회    2008/09/29

이번 9월8일부터 9월25일까지 있었던 LA지역집회는 은혜중에 마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LA세계소망교회(오세훈목사) 집회


LA세계소망교회(오세훈목사) 집회


남가주든든한교회(김충일목사) 집회


노숙인들을 위한 거리배식


라면과 빵을 먹기위해 아침7시전부터 서있는 줄, 보통한지역에서 200~300명정도가 아침무료급식을 먹고 있음


한 노숙인과 함께.


매일 아침 빵을 제공하고 있는 한울타리선교회


매주 토요일에는 선교회사무실에서 예배와 식사를 제공하고 있음


한울타리선교회(나주옥목사) 집회


한국에서 찬양,율동으로 유명했던 나하나교수와 함께


이번주는 노숙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LA갈비로 점심 제공.


한울타리선교회에서 드럼과 기타반주를 담당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


코너스톤교회(김세창목사) 집회


코너스톤교회 김세창목사님과 함께


등대교회(이상남목사) 예배참여


등대교회 식당에서


추석날 푸짐한 대접


가정 사역자 루디아황선교사님 집에서 집회


가정 사역자 루디아황선교사님 집에서 집회


미주크리스천신문사 기자와 인터뷰


노인요양원에서 집회


노인요양원에서 집회


동문교회(이규섭목사) 집회


동문교회 이규섭목사님과 함께


CBMC 오렌지카운티 조찬기도회


새들백한인교회(송성섭목사) 집회


새들백한인교회(송성섭목사) 집회


새들백한인교회(송성섭목사) 장로님들과


LA에 있는 동안 좋은 숙소를 제공해 주신 집사님께 안수기도


만나텍회사에서 집회


만나텍회사에서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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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2008/09/30

올 8월21일 보건소건강검진결과 폐에 종양이 발견되어 시립병원에서 자세한 검사를 받은 모덕화씨가 결국 폐암으로 인해 어제저녁 6시경 돌아가셨다. 수술은 잘되었지만 고령의 나이에다가 신부전증,당뇨등 몸이 쇠약할대로 쇠약해져 있어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어제 오늘 돌아가실거란 말을 듣고 서울의료원에 찾아가보니 의식은 없는 상태였고 온 몸은 시퍼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담배 좀 그만 피우라는 권고에 줄이고 있다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어느새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부친이 중국분으로 70평생을 한국국적없이 중국집 종업원등을 하며 살아오셨다. 그야말로 한국에서도 밑바닥생활을 계속해오신 분이다.

게다가 쉼터에서도 기침을 많이해서 방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3층본당에서 지내 오셨다.  입원하기 얼마전 상담할때, 모덕화씨는 예배드릴때마다 잠이와서 하나님께 잠 좀 안자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그때는 잠이 안왔다는 간증을 하기도 했었다.  70년이라는 힘든 세월과 2년 남짓되는 쉼터생활을 마감한 모덕화씨에게 주님의 나라에서 평안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줄 믿는다.